[인류의 미술 Chapter II. 르네상스부터 네오클래식] (89) 1784년. 예술의 정의 역할이 나타남.  신고전주의의 시조인 루이 자끄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1748~1825)와 그의 대표작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The Oath of the Horatii, 330 x 425cm, 루브르 소장
[인류의 미술 Chapter II. 르네상스부터 네오클래식] (89) 1784년. 예술의 정의 역할이 나타남.  신고전주의의 시조인 루이 자끄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1748~1825)와 그의 대표작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The Oath of the Horatii, 330 x 425cm, 루브르 소장
  • 조명계 용인대 교수
  • 승인 2022.03.0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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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위키미디어)
The Oath of the Horatii (출처=위키미디어)

약 1780년부터 1820년까지 신고전주의 미술에 대하여는 에드거 앨런 포에의 말을 빌리면 "1780년부터 1820년까지의 예술이란 그리스와 영광과 장엄함의 로마, 이들이 투영된 네오클래식이다. 회화, 조각, 건축, 가구에서 고전주의의 부활은  화려한 로코코 양식에 대한 분명한 반작용이었다."

그리고 이때 분명한 메시지 하나가 등장했는데 바로 1784년, 신고전주의의 시조인 루이 자끄 다비드가 그린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작품이 등장한 것. 이 작품은 다름 아닌 로코코의 죽음과 네오클래식 미술의 탄생을 의미한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작품은 전해 내려온 고대 로마의 이야기로 로마와 알바 왕국간 소모적인 전쟁을 마무리 짓기 위해 양국을 대표하는 세 명의 전사들 결투로 승패를 정하기로 한 것. 페널티킥으로 전쟁을 마무리하기로 것이다. 바로 이 결투가 막 시작되는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로마의 대표로 호라티우스 삼형제 그리고 알바의 대표로 쿠리아티우스 형제들이 싸우게 되었다. 운명적인 것은 이들 두 가문은 사돈간이었다고 한다. 쿠리아티우스 형제 중 하나가 호라티우스가의 딸, 카밀라과 약혼을 하였고 쿠리아티우스가의 딸, 사비나는 호라티우스가의 형제 중 한사람과 결혼을 했다.

우측에 아이들과 함께 있는 여인이 사비나, 흰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카밀라로 국가의 부름이 남편들의 운명보다 우선함을 보인 이 그림이다.

애국심을 교육하는 다비드의 그림이 바로 신고전주의가 의미하는 예술의 역할을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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