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미술 Chapter I.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39) 547년 테오도라 Theodora (500 – 548)
[인류의 미술 Chapter I.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39) 547년 테오도라 Theodora (500 – 548)
  • 조명계 용인대 교수
  • 승인 2020.01.2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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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나의 성 비탈레 성당 Mosaic of Theodora - Basilica San Vitale (Ravenna, Italy)
라벤나의 성 비탈레 성당 Mosaic of Theodora - Basilica San Vitale (Ravenna, Italy)

오늘은 비잔티움 제국의 이탈리아 지배 거점이었던 라벤나의 성 비탈레 성당에 남아있는 테오도라의 모자이크를 올립니다.

과연 여인은 이쁘고 볼일인가. 고금을 무론하고 이뻤으므로 신분이 비천했다 하더라도 왕비가 되었다는 역사 스토리는 동서고금 무론하고 존재한다. 

이 이야기가 유럽에서 가장 먼저 회자되는 여인은 바로 비잔틴의 왕비이야기다. 

천민 출신으로 콘스탄티노플 경기장의 무희였으나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황위에 오르기 전 그녀의 미모와 총명에 반하여 (여기서 총명함이란 사실이 아니었을 듯도 하다. 정당화하기 위함이지) 귀족과 천민의 결혼을 금지하던 로마법을 개정하면서까지(아마도 영국의 헨리8세도 여기서 배웠을 듯하다. 

재혼을 하기 위해 국교를 바꾸었을 정도였으니) 결혼을 했다. 그때가 525년이었다. 그리고 테오도라는 527년 부부가 함께 왕관을 쓰는 대관식을 가진 후 어마어마한 권력으로 동로마제국의 여왕으로 통치에 참여했다.

그녀의 강한 면모는 532년 남편 유스티니아누스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거세어 졌는데 이유는 무리하게 황제권을 강화하고 세금을 늘린 데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그때 남편에게 내린 서릿발같은 말 한마디 ...비겁하게 도망가느니, 황제답게 싸우다 죽는 것이 낫다... 테오도라의 한 마디에 유스티니아누스는 군대를 동원하여 3만여 시민을 죽이고 다시금 권력을 틀어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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