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미술 Chapter I.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53) 서기 1150년경, 아나사지의 수수께끼 Riddles of the Anasazi
[인류의 미술 Chapter I.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53) 서기 1150년경, 아나사지의 수수께끼 Riddles of the Anasazi
  • 조명계 용인대 교수
  • 승인 2020.05.04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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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사지. 아마도 처음 들어보는 분들이 많을 듯하다. 본 글을 연재하면서 오랜만에 다시 떠올린 미국 대륙 인디언의 조상 아나사지 문명을 다시한번 살펴보게 되었다. 

남부 유타주의 협곡은 나름 캠퍼(야영객)들에게는 매력있는 장소인데 근 800년전에 이 협곡에 살던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이런 척박한 곳에 거주하기로 결정했을까? 

진흙과 돌만 가지고 평지로부터 200미터 높이의 책꽂이 선반같은 위치에 정착지를 건설한 이들은 기원전 1500년전에... 우리로 말하면 고조선이 BC 2333년 단군왕검 할배가 세웠으니 그 즈음이라고 해두고... 아나사지 문명인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아나사지라...그들의 후손들이 누구냐면 오늘날 호피족 주니족같은 푸에블로 인디언들을 말한다. 그들은 오늘도 유유히 흐르고 있는 한많은 리오 그란데 강을 따라, 뉴멕시코, 그리고 북부 애리조나에서 살고 있었다. 

잠시 리오 그란데 강에 대해서 한 마디, 요즈음은 중남미 국가의 불법이민자들이 살 길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밀입국을 했지만 지금부터 겨우 150년 전만 해도 미국 땅에 살던 미국인들이 살 길을 찾아 멕시코로 불법이민을 하던 때도 있었다고 하면 믿을까? 사실이 그랬다. 당시 리오 그란데 강이 한많은 강이었다는 이야기... 

10세기와 11세기 동안에는 서부 뉴멕시코에 있는 차코캐넌이란 곳은 대략 유타, 콜로라도, 애리조나, 뉴멕시코가 만나는 네 개의 지역에 해당하는데 이곳이 바로 아나사지 족의 문화적 중심지였다. 이 곳에 무려 3만 여명이 살고 있었다. 

아나사지는 그곳에 차코캐넌의 푸에블로 보니토와 같은 웅장한 마을을 지었는데 이 단지는 높이가 5층이고 800개의 방이 있었을 정도였다. 아나사지는 앞서 말한대로 네개의 주 지역을 중심으로 살다가 1250년경 지역 방어와 쉬운 은신처를 위해 절벽 높은 곳에 정착지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이들 절벽주거지들은 그때 지어진 것이다.

건조한 기후와 돌기둥들에 의해 잘 보존된 이 마을들은 1880년대에 그것들을 발견한 영국 탐험가들을 탐험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이를 절벽(클리프) 거주자들이라고 이름 지었다. 13세기 말, 자연재해들은 아나사지들이 그들의 고향을 떠나 리오 그란데와 리틀 콜로라도 강을 향해 남쪽으로 이동하도록 강요했다. 고대 문화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수수께끼는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자국민들의 이주와 관련된 구술 역사를 가지고는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고고학자들은 아나사지가 왜 둥지를 떠났으며 그림들이 왜 어둡게 되었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원시 유적지에서 답을 도출해 냈는데 그 답이란 아나사지 자신들 스스로 폭력과 전쟁, 사람을 잡아 먹는 식인 풍습을 말한다.

마을이 왜 절벽에 높이 지어졌는지에 대한 질문에 흥미를 가지지만 무엇보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인 것이 주된 의문이다. 어떻게 아나사지가 절벽을 기어오르며 그곳에 거주했을까 라는 의문은 물론이고 발판을 만들기 위해 돌도끼로 찍어낸 나무 줄기를 단단히 묶어 사용했다 라는 정도만 상상할 뿐이다. 기이한 인류의 문명은 아직도 여러 도처에서 발견된다. 실로 인간의 능력이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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