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和)'의 미덕과 '좀비 정치'의 기로에 선 일본 정치
'와(和)'의 미덕과 '좀비 정치'의 기로에 선 일본 정치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0.06.2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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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일본에서 ‘와和’라는 한자는 매우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먼저, 와和는 일본을 나타내는 한자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한민족을 나타 낼때 ‘한韓’이란 한자를 쓰듯이 일본에서는 ‘일日’이 아닌 ‘와和’를 사용한다.

실제로 일본요리는 ‘일식日食’이 아닌 ‘화식和食’,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着物’는 ‘화복和服’, 일본문화는 ‘화문화和文化’, 그리고 일본민족도 ‘야마토민족大和民族’이라 명칭하고 있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전통과 미덕의 하나로도 역시 ‘와和’를 꼽는다. 이때는 한자 그대로 ‘조화, 화합, 평화, 균형’ 등의 의미로 사용한다.

일본은 예로부터 개인보다는 집단의 화합과 조화, 질서를 중시했다. 와和야말로 일본 정신문화를 대변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사회는 와和를 강조하며 와和속에서 살아온 와和의 민족이다. 

와和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에게 민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남을 배려하고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행동규범으로서 ‘메이와꾸(迷惑, 폐, 성가심, 귀찮음)’를 강조했다. 가정에서도 교육기관에서도 ‘메이와꾸오 가께루나!(迷惑をかけるな, 폐를 끼치지 마라!)’를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의 근본으로 가르쳐온 것이다.

그러나 아베총리는 일본의 유구한 전통과 미덕을 고려할때, ‘일반적이지 않은’ 일본인, ‘보통이 아닌’ 일본인 즉, ‘정상적이지 않은’ 일본인이라 할 만 하다. 왜 일반적이지 않고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인가? 일본을 일본답게 하는 전통과 미덕을 계승하기는 커녕 이웃나라들과 불화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으니, 어찌 보통의  일본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2018년 9월, 3연임에 성공한 아베총리의 집안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다. 그의 부친은 외상(외교부장관), 친조부는 중의원, 외조부는 전후 A급전범출신으로 총리를 역임한 기시 노부스케이며, 외종조부는 61∼63대 총리였던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다.

아베총리가 극우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이런 집안 내력과 관련이 있을수 있다. 이와 더불어 그 집안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현, 즉 막부시절에 조슈번으로 불렸던 곳과도 관련이 있는것 같다.

메이지유신을 설계하고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을 주창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바로 이곳 출신인데, 그는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초대 총리의 스승이었다. 그런데 아베총리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바로 이 요시다 쇼인을 들고있다. 그러면서 그의 묘소를 참배할 때마다 ‘쇼인 선생님의 뜻을 충실히 계승하여 그뜻을 이뤄 내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했다.

그가 집권한 뒤, 일본사회의 우경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이웃나라들과의 사이 또한 급격하게 악화된 것은 우연만은 아닌게다. 실제로, 극우성향이 강한 그가 집권한 이래 한일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그의 노골적인 ‘반한정책’으로 인해 재일한국인에 대해 차별을 부추기는 낙서등이 급증했다. 

어쩌면 아베총리는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가 말하는 군주를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자국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오명이나 불명예 따위는 아랑곳해서는 안된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신의나 자비등에 어긋나는 행동도 과감히 취해야 한다. 필요할 경우에는 어떻게 악해져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조국 일본을 위해서라면’ 온갖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는 아베 총리가 떠오른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자국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면 그 어떤 오명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나 ‘필요할 때는 악해질 필요가 있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오역하여 어설프게 따르고 있는 것 같다.

현재의 아베 총리는 과거를 부정하는 식으로 스스로 오명을 만들어 국제사회에서 일본이라는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 일본은 주변국에 대해 악해질 필요가 있는게 아니라 더더욱 선해질 필요가 있다. 이 오판으로 스스로 악해짐으로써 일본의 앞날을 더 어둡고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베 총리는 마키아벨리즘을 잘 이해하고 실천한 미국의 링컨 Abraham Lincoln 대통령을 어설프게 모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링컨은 ‘노예해방’이라는 인류보편의 목적달성을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아베총리는 과거에 행한 침략사실을 인정하기는 커녕 ‘전쟁 가능한 국가’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논어를 읽는다는 사람이 정작 논어를 모른다(論語よみの論語知らず, 론고요미노론고시라즈)’는 일본속담과도 같은 격이다.

일본에는 ‘두 개의 일본’이 있다. 하나는 아베 총리와 같이 그들의 조상이 저지른 추악한 과거를 부정하는 ‘불량한 사람들’이다. 나머지 하나는 과거의 침략을 사죄하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긍정하건 부정하건 이 상반된 둘 모두가 오늘날의 일본이다. 그러니 우리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 부정적인 측면만을 과도하게 부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성해볼 필요도 있다. 일본에는 후자와 같이 잘못된 과거사를 사죄하는 선량한 일본인들도 적지 않다. 우리가 그들을 간과하고 불량 한 쪽에만 치우쳐 전체 일본과 일본인을 싸잡아 폄하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이겠는가. 

실제로 나는 침략의 역사를 알게 되자 바로 피해국에 사과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태국 방콕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외국 여행자들끼리 모여 여행 정보를 주고받는 한 카페에서였다.

동남아 출신의 한 친구가 갑자기 역사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는데, 함께 있던 일본인 청년에게 ‘일본은 왜 역사를 왜곡하는가?’ 하고 물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자리에 있던 중국인 여행객도 비난하고 나섰다. 얼굴이 빨개지며 주눅 든 기색이 역력한 일본인 여행자의 모습이 너무 측은해 보여 “이 사람은 아마 자신의 조상이 저지른 역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일본 정부는 과거사를 가르치지 않거나 왜곡해서 가르치기 때문이다”라고 방어(!)해줬다.

이후 그는 내게 “일본이 과거에 그렇게 나쁜 일을 했는지 몰랐습니다. 사실이라면, 대단히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죄하고 싶습니다”라며 사과해왔다.

일본에는 아베 총리와 달리 ‘와’를 소중히 지키며 ‘메이와꾸(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비록 두드러지게 표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그들이 있기에 일본이 오늘날과 같이 성숙하고 건전한 모습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일본 사회에는 좀비 정치인 아베 총리와 같은 사람들보다는 ‘와’를 존중하는 일본인들이 훨씬 더 많음을 굳게 믿는다. 따라서 한일 관계 및 동북아의 밝은 앞날을 위하여 비난보다는 긴밀한 협력에 더더욱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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