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지역감정
한∙중∙일의 지역감정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0.08.12 0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한국의 지역감정. 특히나 정계에 똬리를 틀고 앉아 두루두루, 고루고루 눈살 찌푸리게 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그런데 지역감정이란 것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아니면 우리만의 ‘고유한’ 것일까?

먼저 일본을 살펴보자. 훗카이도, 혼슈, 시코쿠 그리고 규슈 등 주요 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총면적은 남한보다 4배 정도 넓다. 인구 또한 남한의 약 3배에 해당하여 1억 2,0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 결코 큰 영토나 결코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도 지역감정이 있음을 감안하면 일본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일본에도 지역감정은 있다. 비록 우리나라처럼 일부 정객에 의해 놀아나거나 극단적인 대립현상을 보일 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말이다.일본의 지역감정을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關東 지방과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關西 지방 간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사회에서 오사카 지역 사람은 도쿄 사람들을 ‘잘난 체에 점잖은 척하는 새침데기’로 폄하하고 있으며, 도쿄 지역 사람들은 오사카 사람들은 ‘돈만 밝히며 거칠고 경망스러운 자’들로 조롱하고 있다. 게다가 간토 지방과 간사이 지방 사이에는 언어를 비롯하여 음식이나 문화, 생활 습관도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어떠한 경위로 이와 같은 지역감정이 생기게 되었을까? 그 대략적 원인은 일본의 근∙현대 역사 속에서 세 가지 정도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1600년 일본이 통일되기 전 동군과 서군으로 나눠 치열한 접전을 전개했던 세키가하라 전투를 들 수 있다. 다음으로는 1867년의 메이지 유신을 들 수 있고, 마지막으로는 1945년 일본의 패전이 바로 그것이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1600년 9월, 혼슈의 중간 지점인 기후 현의 세키가하라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동군]와 이시다 미쓰나리[서군]가 격돌한 싸움이다. 이 전투는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추종 세력들을 괴멸시키고(1614년), 일본을 통일시키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후 집권한 동군 세력은 통일 국가 일본의 중심을 오사카,즉 간사이에서 에도江戶(지금의 도쿄후東京府, 지금의 간토 지역)에 막부를 열고(에도막부 시대, 1603~1867), 메이지 유신이 발발할 때까지 일본호의 키를 거머쥔다.

이에 반해 패자인 서군 세력은 하급 사무라이(무사)로 전락하여 대부분이 조슈번(현재 야마구치 현), 사쓰마번(가고시마 현), 도사번(고치 현)등의 일본 열도의 서쪽 변방 지대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이 ‘에도막부 타도’를 부르짖으며 메이지 유신으로 역사의 전면에 재부상할 때까지 약 300년간의 세월을 역사의 음지에서 보내게 된다.

한편 일본 역사를 전공한 나카다 씨에 의하면 동군의 에도막부에 대항하여 나온, 소위 일본 ‘근대화의 기수’라 불리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바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한 서군 세력의 후손들이라 한다.

에도막부 타도에 성공한 이들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으로서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며 새로운 시대를 그려 나간다. 서군 세력 환희의 이면에는 몰락한 동군 세력이 온갖 차별과 탄압 속에 절치부심하는 원한기를 보내게 되었으니, 이런 식으로 일본 열도의 지역감정은 그 골이 깊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여 일본에 진주한 연합군에 의해 어느 정도 개선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 진주한 연합군 사령부가 일본의 재건과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는 뿌리 깊은 지역감정의 해소가 급선무라고 판단하여 적극적인 동∙서 화합정책을 전개하였기 때문이다.이처럼 유서 깊은 일본의 동∙서간의 지역감정은 20세기 중반 들어 조금씩 완화되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중국에도 지역감정은 존대한다. 대륙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각 지역의 고유 관습, 전통, 언어 등이 천차만별이고, 또 여러 가지 요인에 기인한 생활 수준의 차이 등이 중국의 지역 감정을 한몫 거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도 일본의 오사카나 도쿄의 대립처럼 양대 도시의 ‘자존심 대결’이 일종의 지역감정으로 나타나는 곳이 있다. 바로 베이징과 상하이가 그곳이다.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이고, 상하이는 사실상 경제의 수도 아닌가. 두 곳 모두 명실상부한 메트로폴리탄이며 매우 화려한 도시로 중국을 대표하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그들의 자존심 싸움은 지역감정으로도 비화되어진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야 말로 중국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두 곳 사람들의 서로를 바라보는 대립적 시각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예컨대 베이징 사람들은 상하이 사람들을 ‘돈만 밝히는 천박한 자들’ 이라고 경시하고, 상하이 사람들은 베이징 사람들을 ’아무것도 없이 허세만 피우는 위선자들’ 이라며 무시하기 일쑤이다. 베이징 사람들은 중국은 베이징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방이라 으스대지만, 이에 대해 상하이 사람들은 중국은 상하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시골이라며 응수하기도 한다.

그럼 몇 개 도시 간의 으르렁거림이 아닌, 중국 전역에서 나타나는 지역감정의 대략적 특징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중국인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습관적으로 출신 지역을 묻곤 한다. 산악지역, 하천지역, 내륙지역, 사막지역 그리고 해안지역 등과 같이 저마다 뚜렷하게 다른 자연 환경을 배경으로 수천 년을 지내 온 탓에 중국에는 도저히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을 수 없는 각 지방의 고유색이 상당하다.

이로 인해 각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자연환경, 거주환경 등의 영향을 받아 저마다 독특한 의식주 문화와 기질, 성향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이렇게 지방마다 천차만별의 지방색이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중국인들은 처음 만날 때 출신 지역을 물어봄으로써 상대방의 일반적인 성향,기질 등에 대해 ‘감을 잡고’, 그와의 앞으로의 관계 설정에 있어 참고로 하는 것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현재 주거하는 해당 지역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공공연한 특혜(역으로 말하면 차별)가 주어지기도 한다. 한 예로 상하이의 경우를 들어보자.

상하이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도시이며, 여론조사에서 가장 살기 좋으며 대다수 중국인들의 거주 희망지 1순위로 지목된다.  잘 나가는 만큼이나 상하이 토박이들의 타지역 사람들에 대한 차별 태도는 외국인들을 문득문득 놀라게 하곤 한다. 그들은 타지역 사람들을 공공연히 ‘와이띠런外地人’이라 호칭하는데, 이속에는 온갖 차별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이런 표현을 쓰는 상하이 사람도 그렇고 그렇게 불려지는 타지 사람들도 그렇고, 별다른 저항감 없이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중국 내 지역 차별이 그만큼 뿌리 깊게 고착화되어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