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해를 위한 기본 마인드 (上) - '무한'한 변화 vs '유한'한 인식
중국 이해를 위한 기본 마인드 (上) - '무한'한 변화 vs '유한'한 인식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0.10.06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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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와 관련, 먼저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해 성찰해 보도록 하자.

1949년의 건국 이래 일당지배를 지속중인 중국공산당은 원래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계급’정당이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이라는 국가 또한 중국공산당이 자본가나 자산가 계급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노동자와 농민층을 대변하는 성격의 국가로써 수립되었다. 이처럼 자본가나 자산가는 원래 중국공산당의 ‘적’이었다.

하지만 2004년 전당대회에서 중국공산당은 대대적인 노선전환을 실시, 자산가와 자본가의 공산당 입당도 전격 허용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공산당은 계급정당으로서의 원래 모습으로부터 탈피하고, 전 인민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국민정당으로 거듭났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적과의 동침’을 과감히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이와 같은 ‘무한’한 변화와는 달리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아직도 ‘유한’하기만 하다. 과거에 형성된 ‘당시’의 인식만으로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오늘’의 중국이 제대로 보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하나의 예를 들어 보다. 동일한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도 지금의 중국과 구소련은 많은 면에서 다르다. 그럼에도 이들을 ‘사회주의’라는 기존의 교과서적 ‘틀’ 속에서 동일하게 바라보고 재단하려 한다는 것은 큰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아직도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규칙이나 제도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경직되고 폐쇄적인 사회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이는 표면에 불과한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현재의 중국사회를 파악하는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는 ‘표리부동’을 들 수 있다. 덩샤오핑이 실시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도입이 이를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 준다. 중국은 아직도 ‘당당하게’ 사회주의 국가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지 않게’ 시장경제라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사실 원래의 이론에 입각해 볼 때,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는 융합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간판을 내걸은 채 선전이나 주하이 등에 경제특구를 설치, 외국자본을 적극 도입하였다. ‘일국양제’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서 홍콩 문제 등도 해결하였다. 이처럼 지금의 중국은 표면과는 상반되는 내용일지라도, 필요하다면 자국 현실에 맞게 수정하며 새롭게 도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구소련과 같이 ‘경직’된 사회주의 국가와는 상이한 또 다른 ‘창조’적 사회주의 국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기존의 사회주의 이론 속에서 파악하려 하고 그 결과 이론과는 너무 다르다고 비난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고의 전근대적인 한 단면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붕괴와 더불어 그 상대적 우월성이 입증된 자유민주주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중국은 어떨까? 실제로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이 이러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며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모든 객체에 최적으로 잘 맞는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완벽하다고 모든 새로운 것도 이 틀 안에서 재단하려 하는가? 아니 그보다도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반드시 기존의 자유민주주의 아니면 공산사회주의라는 이분법적 잣대로만 파악해야 하는가? 이 두 가지 잣대만을 고집한다면, 앞으로 대두될 수 있는 더욱 다양한 다원적 세계의 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시키는 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새로운 것에 대해 낡은 것만 들이대다 보니 ‘중국은 이러저러하니 이상하다’, ‘중국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비아냥거림과 비난이 쏟아져 나오기 십상이다. 문제는 내 안의 낙후된 편견에서 비롯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결국 중국이라는 역동적인 유기체를 제대로 읽어 내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 안의 낡은 틀과 닫힌 사고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13억이라는 인구를 지닌 인류사상 최초의 초거대 단일국가와 함께 하고 있다. 이제껏 그 누구도 ,그 어느 나라도 이와 같이 엄청난 규모의 단일국가와 함께 교류하거나 지내본 적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교류해야 하는가? 그 누구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데 그 해답을 어디서 어떻게 구해낼 수 있을까? 

현재의 중국을 두고 정작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비난과 비아냥거림이 아닌, 이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논의 등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까지의 낡은 이론적 틀이나 경제 군사력 위주로 바라 본 기존의 중국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점에서 새로운 중국관을 정립하도록 연구하고 고민하며 논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금의 ‘중국 현상’은,어쩌면 우리에게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며 그 문제에 새롭게 접근하도록 요청하는 각성제요, 기폭제일 수 있다. 중국이라는 새로운 객체를 탐구하고 관철하여 이를 잘 분석하고 해석해 낼 수 있는 지적 탐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도 우리가 먼저 더 열린 사고와 개방된 자세로 중국을 새롭게 맞이하도록 스스로를 새롭게 갖추어야 한다. 우리 선조들 또한 ‘새 술은 새 잔에 담아야 한다’고 하질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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