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미관
중국의 대미관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02.0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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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이번에는 중국의 대미관을 살펴보자.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도 일찍이 “일본의 Yes는 No를 의미한다!”며 불만을 토로한 바 있듯, 일본의 애매한 어투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 그대로이다. 하지만 대륙국가 중국의 그것도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흔히 대륙다운 호탕함과 기개로 중국을 바라보기 쉽지만 이러한 측면에서는 실상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1972년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来 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개최했을 당시의 일화를 보자. 당시 그들은 우리 한민족과 관련 “한국인들은 남과 북 모두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국민”이라고 견해를 함께했다고 한다. 이처럼 중국인과 일본인은 함축적 언행을 즐긴다. 아니, 즐긴다기 보다는 매우 익숙하다.

그런데 이는 양국의 지나간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져 왔다. 한반도에 고려나 조선 등 하나의 왕조가 수백 년간 이어지는 동안,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패권의 영화가 고작 일이백 년, 혹은 수십 년에 불과했으니 이에 따라 각 개인의 안녕 또한 항상 풍전등화와 같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같은 과정에서 자연스레 몸에 밴 것이 언행상의 신중함, 애매모호함, 즉 함축적 언행 사용이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잠시 새어나갔는데, 화제를 다시 본론으로 돌리자. 쉽지 않겠지만 중국인들의 대미관을 한두 마디로 표현하라면, 미국을 ‘메이꾸어美国’라고 부르는 예를 들어 설명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그동안 다녀 본 대부분의 아시아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일 패권국인 미국을 적잖이 부러워하며, 이러한 미국행이 곧 출세를 보장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이와 같은 단층적 부분만으로 중국 사회의 대미관을 파악하려 해선 안 된다. 중국인 특유의 샤오리 인따오笑里隐刀, 즉 미소 속에 감춰진 칼날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스스로를 주변국들의 중심에 서 있는 국가인 ‘중국中国’이라 호칭할 만큼 콧대와 체면이 강하다. 중국사에는 대륙이 온통 피비린내에 찌든 상황에서도 짐짓 주변의 이민족이나 국가들에 복속과 조공을 강요하는 모습이 적지 않다. 이와 같이 뜬금없는 중심주의 사상에 오랜 세월 자족해 온 그들이니 만큼 현재의 중심에 서 있는 국가가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그 중심이야말로 바로 그들이 서야 할 자리라고 생각하며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와신상담적 분루관憤淚觀. 중국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현재 자신들이 2030년경이면 미국을 제치고 명실상부 세계의 중심 국가로 ‘돌아갈 것’이라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샴페인이 아직은 그들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14억을 이끌고 2030년의 고지까지 이르기에는 수없이 많은 험산준령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나날이 격심해지는 빈부 격차, 실업 문제, 각종 부정부패 등의 중국 내부 문제. 게다가 대외적으로는 16개 국가와 국경을 맞이하고 있는 만큼 미국과는 달리 항시적으로 영토 문제, 자원 문제, 국경 분쟁 등에 노출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중국은 그 누가 어떠한 장밋빛 전망으로 부추겨도 현재가 버겁기만 하다. 자신들과 직관된 이들 국내 문제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예서 멈출 수 없다.”가 아닌 것이다. 결국 앞의 모든 상황은 곧 중국을 ‘미소 짓게’ 만든다. 국가 주석의 옷소매가 잡아 끌리는 무례를 당하고도 중국인들은 미소 짓는다. 미소답지 않은 미소 속에서 ‘분루憤淚’를 삭이며 절치부심의 칼날을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쌓여져 가는 ‘대국’의 ‘자존심’을 차마 다 누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참고 참다 한계에 이르면 대륙이 꿈틀거리게 된다. 1999년 미국 전투기에 의한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 폭격 사건 때와 2005년 4월에 있었던 중국 각지에서의 격렬하고 무분별하게 일어난 반일 데모는 다름 아닌 바로 이들의 쌓이고 쌓인 ‘자존심’의 응어리 분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바로 이러한 중국인의 정제되지 못한 중화민족주의의 폭발이야말로 중국 생활 중에 가장 두렵게 느끼는 중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의 응어리가 어떠한 이유로건 연쇄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하면 중국 당국은 물론 그 어떠한 세력도 이들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의 유엔 안보리 진출 노력과 관련,중국에게 일본을 방해하지 말라고 직접 요구한 바 있다.아울러 니콜라스번스 미 국무부 정치 담당 차관도 중국과 한국에서 일어난 반일 시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여 한∙중 양국에게 대일 관계를 더욱 잘 개선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하기도 하였다.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다.

한편 우리와 관련하여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언제 어디로 튈지 모를 중국인들의 럭비공 민족주의가 비단 미국이나 일본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이웃한 우리에게도 엄청난 폭발력으로 파급되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 역사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1894년의 청·일 전쟁으로 인한 중국 사회의 대변혁(무술변법), 1919년의 5.4운동으로 인한 중국 정계의 대변화, 1930년대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인한 장제스 정권의 동요, 그리고 1985년의 대대적 반일 시위로 인한 중국 내 민주화 운동… 이렇듯 중국은 외부 타깃에 대한 응어리 표출이 부메랑이 되어 곧 스스로도 엄청난 내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만약 유사시에는 통제력을 잃은 대륙으로부터 우리에게 튕겨져 나올 불똥은 대륙의 규모만큼이나 어마어마할 것이다. 바로 이점을 우리는 깊이 명심하며 이에 대해서도 항상 준비하고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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