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아줌마
한·중·일의 아줌마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02.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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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는 것은 동서고금 일치한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한국은 예외라고. 한국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기 때문이란다. 세 종류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수줍은 듯 배시시 웃으며 연약한 듯 보이는가 싶으면서도 ‘몸빼’ 자락 휘날리며 천하무적 그 위풍당당한 아줌마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우리의 어머니요, 아내이며 딸들인 그들의 또 다른 이름은 아줌마. 이렇듯 한국 여인들은 결혼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되면 무적의 아줌마라는, 불가사의한 존재로 화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일부 일본 남자들은 한국 여자와 사귀기가 두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웃 중국과 일본에는 우리와 같은 아줌마들이 존재할까?

먼저 일본을 살펴보자. 우리네 아줌마들이 ‘아줌마학學’의 정점에 위치해 있다면, 일본의 아줌마인 ‘오바상小母さん’들은 아마 입문 정도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아줌마계界에 입문하려면 우선 그들만의 기본적 언행소양에 부합되어야 마땅하다.

이를테면 전투적 특성을 충분히 파악하게 하는짙은 한 줄기 눈썹과 푸근한 몸매. 언제든지 순식간에 치열한 전투에 돌입 가능한 전사적 속성으로 똘똘 뭉친 그들이지만, 등 따스하지 못하고 배부르지 못한 이들은 바라보며 아낌없이 눈물을 쏟아 내는 한없이 자비로운 모순적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하다. 바로 이와 같은 기준에 비춰볼 때 일본의 오바상들이 우리식 아줌마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기에는 퍽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아줌마가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이이에,나니오잇데이루노데스카?(아니요,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이다. 일본 열도 오바상들의 부드러운 메이크업과 있어 보이게 차려 입은 용모며 머리를 연신 끄덕이는 그 자태는 일반적 우리 아줌마들의 모습과 적지 않은 괴리가 있기는 하다. 이에 자칫하면 일본 사회의 아줌마 부재론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교 상대가 ‘막강 슈퍼 파워 우리 아줌마’였을 때다.

솔직히 일본의 오바상들은 우리네 아줌마와는 외형도 이질적으로 다르고, 콩나물 값 20원이라도 깎으려는 우리 아줌마들보다는 투사 기질 또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수줍게 웃음 짓던 철 지난 사진을 꺼내 보고 “우리에게도 이런 때가 있었지.” 하며 ‘호호호 하하하’ 웃어젖히는, 아줌마들 특유의 위용과 고집으로 무장한 채 엄연히 일본의 가정을 평정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기타 세력들이 감히 범접하기 힘든 위상을 지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들 열도의 오바상들이 한국에 와서 우리네 아줌마들을 볼라치면 적잖이 소스라치곤 한다. 일본 사회를 두루두루 평정한 막강 ‘오바상 파워’이기는 하지만 한국 아줌마들의 그 불굴의 투지와 물불 안 가리는 저돌적 승부력에는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일본 오바상들이 한국의 아줌마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아줌마들은 어떠한가? 중국에서는 아줌마를 일반적으로 ‘아이阿姨’라고 불린다. 아이? 아이하면 우리는 ‘차일드child’의 우리말인 ‘아이’를 떠올리며 부드럽고 귀여운 이미지를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오해는 금물! 중국 아이는 결단코 그러한 아이가 아니다. 일단 중국 대륙의 아줌마, 즉 아이는 우리의 아줌마들과 외견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일반적이지만 화장을 했다 해도 우리네 아줌마 스타일과 유사하다.

그렇지만 막 잠에서 깬 듯한 머리 모습이나 언제든지 마음 내키면 핑크빛 잠옷 바람으로도 거리를 활보해 대는 중국 ‘아이’들의 행태는 막강 파워 우리네 아줌마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야말로 중국식 ‘아이’들의 ‘울트라 슈퍼 파워’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바로 이 점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 대륙의 ‘아이’들은 한반도의 아줌마들을 능가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이들의 위용은 14억의 인구가 부비고 비비며 살아가는 중국 대륙 그 어느 곳에서도 당당하다.

이와 같은 중국 ‘아이’들의 압권은 그들 부부싸움에서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부부싸움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특히 일본), 부부싸움이야 집안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부부만의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많은 경우, 라운드를 집밖으로 옮겨 동네방네 행인은 물론 강아지나 고양이들까지 가던 길 멈춰 구경하게 하는 동네 행사처럼 치르곤 한다.

거침없는 몸짓과 고성방가의 와중에도 군데군데 추임새 들어가듯 풀어 내보이는 콧물, 눈물과 함께 “아이고,내 팔자야!” 타령은 빙 둘러선 이들로 하여금 상대방 아저씨의 판정패로 귀결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들은 시장에서나 슈퍼에서 심지어는 다국적 대형 할인매장 등 장소를 불문하고 고수끼리 서로 부딪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으니, 한번 그 상황을 상상해 보시라.

중국 아줌마들의 그 요란한 설전을, 양파 한두 덩이 조금 더 안 준다고, 혹은 우리의 호떡 비슷하게 생겨 먹은 빵을 서로 먼저 사겠노라 달려들며 소리소리 지르는 그 모습을. 어쩌면 그 옛날 중국에 파견된 우리 조상들이 중국 아줌마들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호떡집에 불났다!”는 표현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거칠고 타협 모르는 듯한 이들의 안하무인은 그들의 소중한 가족들 때문이다. 자신의 소중한 아들과 딸, 남편을 위해 끊임없는 일대 결전을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아줌마와 일본의 오바상이 그렇듯 말이다.

이와 같이 한국의 ‘아줌마’, 열도의 ‘오바상’, 그리고 대륙의 ‘아이’들은 언행상 표현이나 정도 등에 있어서 각국의 여러 변수와 맞물려 차이를 나타내고는 있지만, 미워하거나 질책할 수만은 없는 어떠한 애처로움과 정겨움이 공존하는 특징을 보인다. 3국의 아줌마들을 비화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한 의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조깅 코스로 이들 아줌마의 삶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재래시장 주변을 추천한다. 그곳에서 달리다가 멈춰서길 반복하며 평범한 행복을 만나 보길 원한다.

실은 나 또한 조깅을 할 때 꾹 눌러쓴 검은 모자 밑,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반투명한 선글라스 안에서 왠지 뜨거워지는 눈물샘을 느끼곤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들 아줌마들에게 단단히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줌마, 오바상, 아이들이여! 그대들은 위대합니다. 그대들의 삶이 언제나 다양한 희로애락으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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