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언어 문화 (下)
한·중·일의 언어 문화 (下)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05.2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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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그 전모는 이렇다. 중국어를 배우러 중국에 온 한 외국인이 겨울방학을 맞아 중국 여행을 하다가 한 중급 호텔에 들어갔다. 피곤이 몰려와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호텔 방에 이불이 없더란다. 그래서 종업원을 불러서 잠을 자려는데 이불이 없다며 ‘뻬이즈被子(이불)’를 갖다 달라고 했더니 난데없이 컵을 가지고 오더란다.

그래서 물 먹으라는 줄 알고 고맙다고 하며 다시 이불을 갖다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툴툴거리며 이번에는 다른 컵을 가져왔더란다. 그래서 자고 싶으니 빨리 이불을 가져오라고 다시 요청하니 무엇이 불만인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갔다가 한참만에 또 다른 컵을 가져왔더란다. 이에 약간 짜증을 내며 왜 이불을 안 가져오고 컵만 가져오느냐고 하니 그 종업원이 버럭 언성을 높이며 우리 호텔의 ‘뻬이즈杯子(컵)’는 이것이 전부라면서 도대체 어떤 컵을 찾느냐는 것이었다. 뻬이즈는 동음이의어로 4성일 때는 이불이요, 1성일 때는 컵의 의미로 쓰인다. 성조 하나 차이로 뜻이 확연히 달라져 버린 것이다.

“비싼 일본의 택시비지만 늦은 밤이라 집 앞 골목까지 택시를 타고 갔어요. 그리고 집 앞에서 바로 내려 달라고 했더니 택시 기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거에요, 글쎄.”의 사연은 이렇다. 늦은 밤, 아무리 치안이 좋다는 일본이지만 외국 여성이 홀로 골목길을 귀가하는 것은 좀 불안하다. 게다가 그녀는 일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어도 아직 서툴다. 하여 용기를 내어 기본요금이 한국 돈으로 6,000원 이상 되는 그 비싼 일본의 택시를 탔다.

철컥철컥 잘도 올라가는 요금에 가슴은 쿵덕쿵덕, 얼굴은 하얗게 창백해져 가고…… 이러한 영문을 알 리 없는 기사는 이 여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점점 창백해지자 힐끗힐끗 그려는 바라보며 불안해한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여기서 나를 죽여 주세요!”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일순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곤두선 채 어찌할 줄 몰라 “으악!” 비명을 지르며 무의식적으로 가속기를 더 밟아 대는 택시 기사, 이 모습에 더더욱 놀란 그녀는 계속 소리친다.

“더 가면 안 돼요! 여기서, 여기서 저를 죽여 주세요!”

고로수ころす(죽이다)와 오로수おろす(내려주다), 즉 ‘고こ’와 ‘오お’의 발음 하나 차이가 빚어 낸 한밤중의 촌극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오로시테구다사이おろしてください.(내려주세요.)” 라고 해야 하는데 “고로시테구다사이ころしてください.(죽여 주세요.)”라고 한 것이다. 이에 겁먹은 기사는 소리 지르며 계속 달리고 또 이에 그녀는 결사적으로 제발 내려 달라며 애걸하였던 것이다. 이것 또한 남 말할 때가 아니다. 나도 한때는 병원에 가서 ‘닌니꾸にんにく(마늘)’가 아파서 왔다고 했으니 말이다. 긴니꾸きんにく(근육)가 아파서 간 병원에서 ‘긴きん’을 ‘닌にん’으로 잘못 말한 것이었다.

이상과 같이 한국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전반적으로 고찰할 때 한국인 가운데 이미 중국어 혹은 일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3개 국어 가운데 나머지 한 개의 언어도 배우기를 권하고 싶다. 위에서 실례를 본 것처럼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그 2개 국어를 상대적으로 쉽게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3개 국어는 각각 적절하게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으므로 그 중 2개 국어가 가능하면 나머지 1개 국어는 간략히 표현해 ‘3분의 1만의 노력’으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 중에는 동일한 한자가 전혀 판이한 의미를 갖거나(예컨대 ‘수지手紙’의 경우 일본에서는 편지, 중국에서는 화장실용 티슈로 쓰임.) 그 쓰기가 미묘하게 다른 경우도 있어 혼동되기도 한다. 외국어 공부가 ‘누워서 떡 먹기’만은 아님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지만, 체계적인 접근 하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학습하기에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라 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지금의 우리 한국인들이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 훌륭한 언어를 물려받았지만 후손인 우리들이 게을러서 중국어, 일본어와 비교할 때 한글의 ‘현대화’가 현저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다양화로 인해 시시각각 요구되는 새로운 언어의 필요성에 대해 중국인들은 적절히 조어造語하며 대부분의 외래어도 자신들의 한자를 사용하여 중국식으로 만들어 나간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도 새로운 조어의 필요성에 시의적절하게 대처하고 가타가나를 사용하여 외래어를 자기식으로 조어하기도 한다.

이들과 달리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들은 이와 같은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 결과 우리말에는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하는 첨단 용어나 단어들이 이들 언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 외국어로 된 단어나 용어들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길게 늘여 설명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멋진 우리글을 창조해 주신 조상님을 대할 면목이 없으니 다 함께 분발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내 경험에 비추어 중국어와 일본어의 쓰임새에 대해 전망해 보려 한다. 국제 사회에서 ‘국력’이라는 측면으로 볼 때 지금까지는 일본어가 중국어보다 제3국에서의 활용도 측면에서 더 유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경제 대국 일본인지라 가까운 아시아 국가를 가더라도 웬만한 곳에서 일본어 정도는 통한다.

하지만 중국의 급부상은 아시아 사회에서 영어 다음으로 통하던 일본어의 위용을 흔들고 있다. 더욱이 중국어의 용도는 특히 전 세계에 고유의 네트워크를 잘 갖추고 있는 화교들과의 교제에서도 요긴하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가까운 동남아시아에 살고 있는 화교들의 파워는 각국의 경제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실제로 화교인 필리핀 혹은 말레이시아인 친구들의 친지들을 만날 때 영어가 통하지 않으면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심지어는 ‘크메르어(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하는 캄보디아 공용어)’라는 언어를 국어로 쓰지만 종주국이었던 프랑스어의 영향이 강해 영어가 잘 안 통하는 캄보디아에서도 중국어의 도움을 톡톡히 보고 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NGO 단체인 ‘한·일 아시아 기금’은 아시아 지역에 무료 학교인 아시아미래학교를 건립,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활동에 협력해 준 화교인 법무부 장관 부인과의 대화도 역시 중국어로 한다. 이들 화교들은 중국이 발전을 거듭할수록 그 위상도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경제발전과 화교들의 위상 강화는 향후 중국어의 쓰임새를 한층 강화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일본어의 쓰임새가 현저히 약화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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