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보다 빠르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보다 빠르다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1.06.2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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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해외에 나가서 생활하다 보면 기업의 주재원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일단 주재원으로 선발되어 파견되면 소속 직장으로부터 남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해외 파견의 꽃으로 불리는 주재원으로의 길이 멀고 험난하기만 할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이번에 글로벌 해외 비즈니스 현장에서 활약하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해외 주재원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 들려주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주재원들은 (각 기업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해외 근무 기간 동안 다양한 특전을 받는다. 먼저 보수의 경우 해외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도 한국 본사로부터 기존의 월급을 그대로 지급받는다. 그 외에도 ‘해외체재비’ 항목으로 해외 생활비, 주택 임대료, 가족 수당비, 자녀 교육비 등 해외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경비를 별도로 지급받는다. 이런 다양한 혜택이 있다 보니 해외 주재원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선망하는 지위다.

하지만 이토록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주재원으로서의 활동은 본인의 포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현지에서 주재원이 하는 활동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에 의해 대개 기대와 다르기 때문이다. 주재원들의 정형화된 파견 생활에 대해 알아보면 그 이유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다.

주재원들은 대개 3~4년 정도의 임기로 파견을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이들의 현지 생활은 시기에 따라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1년차 때는 우선 현지 사정에 적응하느라 분주하게 보내게 된다. 주재원 가운데 중국과 관련된 전공자가 더 적은 것이 현실이므로 무엇보다 먼저 현지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업무 자체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가 없다. 그러다 어느 정도 적응기를 거친 2년차에 접어들면 현지 직원과의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 기업 문화 등에서 비롯되는 오해와 마찰이 빚어지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주재원들은 강도 높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대개 주재원들은 한국 본사에서 유능함을 인정받고 발탁된 인재인데, 그런 우수한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 발휘는 고사하고 현지 직원들을 다루는 데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지 직원들과의 마찰과 대립 때문에 일에 몰두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이런 실정이니 부임하며 품었던 ‘중국 시장을 제패하겠다’는 포부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이런 사정을 모르는 본사의 압박에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이 같은 우여곡절 속에서 점차 안정을 찾아갈 즈음에는 현지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현지 직원들과의 소모적인 마찰을 피하는 노하우도 나름대로 터득하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안정을 찾고 3년차에 이르면 곧 귀국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소속처는 한국 본사이므로 귀국 후의 입지에 신경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귀국 발령을 받아 돌아가면 다시 후임이 오고, 넘치는 포부와 자신감을 가진 후임은 선임의 전철을 거의 그대로 밟게 된다. 한국에서 인정받은 능력과 업무 방식 등 모든 것이 다른 외국에서는 자신의 실력을 100% 실적으로 남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현상이 끊이지 않고 반복된다.

주재원들의 이와 같은 현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계 기업들은 벌써 수십 년 전부터 해외로 진출하여 주재원들을 파견해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은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이런 소모적인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은 파견 주재원과는 다른 시스템의 해외 현지 채용에 점차 주목하게 된다. 어쨌든 외국에서는 본국에서 바삐 근무하다 갑작스레 발령받고 나온 주재원들보다 현지 언어에 더 익숙할 뿐 아니라 문화와 관습, 상거래 및 비즈니스 문화 등에도 능통한 인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는 B군의 스토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원래 대기업 입사를 꿈꿨는데 면접 기회마저 받지 못해 방황의 시기만 이어졌다. 중국어를 전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중국어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명문대 출신도 아니었다.결국 한국에서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포기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멀리 중국까지 오게 되었다.

중국에 와서 보니 한국에서의 거듭된 낙방은 오히려 기회였다는 것을 B군은 알게 되었다. 필자가 추천해준 중국 현지의 한국 대기업 계열사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그렇게 비록 멀리 돌아왔지만 제대로 된 길에 들어서서 부지런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회사에서 그에게 주재원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입사 당시 그의 대우 조건은 현지 채용 수준이었으므로 주재원이 받는 대우에 비하면 훨씬 낮았다. 그랬던 그가 입사한 지 2년 만에 주재원으로 승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성실한 업무 태도였다. 그리하여 B군은 후임을 이끌어주는 멋진 선배로 성장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S군은 방글라데시로 진출한 한국 대기업의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S군을 방글라데시 출신의 한 친구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틈만 나면 S군 칭찬을 했다. 성실한 데다 벵골어(방글라데시어)도 잘하고 주위 사람들과의 친화력도 높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말대로 S군은 자신의 해외 진출담을 들려주며 필자를 감동시켰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입사 지원서를 넣어도 매번 실패했죠. 비참하고 암담한 심정에 빠진 전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어요. 하지만 수중에 돈은 없으니 물가가 싼 나라를 골라서 잠깐 여행이라도 하기로 했고, 그래서 찾은 곳이 이곳이었어요. 지금은 물론 안정되게 살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대외적으로는 세계 최빈국의 나라지만,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한 행복도 조사에서 매번 높은 점수를 받는 나라이기도 하죠. 게다가 인구도 거의 2억 명에 육박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가능성도 큰 나라입니다.”

온갖 실패를 겪고 한국을 떠난 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방글라데시의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구경하고 다녔다. 한국에서의 암울한 기억을 잊기 위해서도, 비참한 심경을 추스르기 위해서도 다른 관심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콧수염이 길고 무뚝뚝하기만 했던’ 현지인의 부담스러운 모습이 점차 친숙하게 다가왔고, 어느덧 그들의 순박한 미소와 순수함, 친절에 반하게 되었다. 이참에 그는 현지어인 벵갈어도 더 적극적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현지인과 더자주 어울려 지냈다. 그러던 중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으로부터 가이드로 잠시 일해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고 ,나름 열정적으로 임한 결과 한국 대기업에서 채용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 후 3년 정도가 지나자 본사에서는 ‘이제부터 아예 회사 일에만 전념해달라’며 주재원 신분으로 특별 채용을 했다.

이 둘은 한국에 있을 때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몇 년에 걸쳐 실패를 거듭했지만 외국에 와서 비로소 제대로 된 기회를 잡고 자신들만의 길을 찾았다. 청년 실업자로 비참하게 살았던 과거의 기억은 이제 그들에게 한낱 추억이 되었다.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전력 질주 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때로는 우회하는 길도 있는 것이다.대기업에 입사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하물며 한국 대기업의 현지 주재원이 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하지만 우회해서 간 길이 앞서 소개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지름길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항상 주위를 둘러보며 체크하는 자세다. 그러려면 정해진 목표만 보고 오직 그것만을 향해 달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고지식한 사고부터 버릴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더 다양한 길을 찾고 연구해보자. 비록 외국에서 좌충우돌하는 고생을 하더라도 그 풍부한 경험을 밑천 삼아 꾸준히 전진하면 얼마든지 더 멋진 성공을 누릴 수 있다. 한국에서의 무한 경쟁에 지쳐서 포기하고 타협하는 삶을 살 바에는 차라리 더 양한 방법을 찾는 편이 낫지 않을까?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인생 선배들이 입증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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