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권력 강화를 이해하는 '70년'이라는 키워드
시진핑의 권력 강화를 이해하는 '70년'이라는 키워드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0.06.1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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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시진핑 주석은 2013년 집권 이래 지속적으로 권력기반을 강화해 왔다. 그러다가 집권 2기가 시작되는 2018년 3월에는, 개혁개방 40년 동안 지속되어온 중국의 정치시스템의 토대를 아예 바꿔 버렸다. 

덩샤오핑이 1인지배 체제의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 1978년부터 채택했던 공산당 최고지도부의 집단지도 체제와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 그리고 공산당이 정부의 일상업무등에 관여할 수 없도록 규정했던 당정의 분리 원칙등을 전격 폐지 했다. 

집단지도 체제는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만큼 비효율적이며, 당정의 분리 원칙 또한 정부관료들의 무사안일과 부정부패등을 초래하여 철두철미한 개혁을 지연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시진핑주석의 단독지배 강화와 당정일체를 도입했다. 시주석을 중심으로 공산당이 모든것을 총괄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중국당국은 2018년 3월의 전인대에서 99.8퍼센트의 찬성으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헌법서문에 포함시켰다. 

참고로 중국 공산당은 이념의 중요도에 따라 가장 중요한 것부터 ‘~주의’, ‘~사상’, ‘~이론’, ‘~관’ 그리고 ‘~론’의 순서로 분류한다. 예를 들면, 가장 중요한 ‘~주의’는 오로지 하나,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사용하고 있다. 뒤를 이어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후진타오 과학적발전관’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이번에 시진핑 주석의 통치이념에 ‘~사상’을 붙여 ‘시진핑 사상’이라 명명했다. 이는 그의 위상을 중국 국부國富의 아버지인 덩샤오핑보다 높은, 중국건국建國의 아버지인 마오쩌둥과 동등한 반열로 끌어 올렸음을 뜻한다. 

중국을 ‘시진핑 천하’로 만들려는 중국 당국의 행보를 바라보는 중국 안팎의 시선은 따갑기 그지없다. 이속에서 중국 민심도 꿈틀거리게 되었다. 

예를 들면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베이징대학에는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던 민중을 군대로 진압한 ‘천안문사태’ 이후 29년만에 대자보가 나붙었다. ‘당장(黨章, 공산당당헌)을 지켜라’, ‘중국은 개인숭배를 반대 한다’, ‘헌법도 지켜라’, ‘국가 지도자는 반드시 임기제한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제목의 대자보는, 덩샤오핑의 ‘국운을 한두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시진핑은 마오쩌둥 이래 처음으로 종신집권을 도모하고 있다’며 공산당의 서슬이 시퍼런 중국에서 국가주석인 시진핑을 직접 겨냥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중국경제의 핵심지역인 상하이에서도 시진핑을 겨냥한 사건이 발생 했다. 한 중국인이 공산당 선전포스터에 인쇄된 시진핑주석의 사진에다가 먹물을 뿌린뒤 ‘시진핑의 독재 및 폭정에 반대한다’고 성토하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린것이다. 

이 두사건을 계기로 중국전역에서는 공산당의 ‘최고 존엄’인 시진핑 주석의 사진이 인쇄된 포스터나 선전판이 훼손되는 등, 시 주석에 대한 불경행위가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이에 처음에는 단호하게 처벌하려던 공산당 당국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중국 각지에 내걸었던 시 주석의 사진 등을 부랴부랴 철거하고 다른 내용의 선전물로 대체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내외의 곱지 못한 눈초리와, 자칫 잘못하면 민심의 호된 역풍으로 공산당 정권이 위기를 맞을 수 있는데도 차마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집권 이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최대 현안중의 하나는 개혁에 관한 것이다. 중국공산당에서는 이를 ‘개혁심화(深化改革, 션화가이거)’라고 명명하고 있다. 실제로 이 개혁심화 정책은 시진핑정권이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가장 역점적으로 전개하는 정책이다.

‘개혁’은 무언가 바꿀것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심화’라는 것은 무언가를 좀더 강력하게 지속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결국 ‘개혁심화’를 우선적으로 들고 있다는 것은 ‘중국에는 변화가 필요한데 이제까지는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지만 나 시진핑이 이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내겠다’는 강한의지를 내비친것이라 할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왜 개혁심화하겠다는 것인가? 

1978년 개혁개방후, 중국은 두자릿수 성장을 지속하는 등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하지만 얻는것이 있으면 잃는것도 있는법. 가파른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나날이 심각해지는 빈부격차를 비롯하여 지역격차, 부정부패, 환경문제, 노사문제, 교육문제, 주거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늘어나게 되었다. 

예를 들면 ‘한사람이 조정에 있으면 백사람이 허리띠를 푼다(一人在朝,百人缓带, 이런짜이차오, 바이런환따이)’라는 중국속담이 있다. 출세한 사람에게 일가친척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들러붙어 산다는 의미다. 중국사회의 뿌리깊은 부정부패를 비아냥거리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참고로 역대 중국왕조의 주된 멸망원인 중 하나는 부정부패였다. 

현재 중국의 부정부패 문제는, 중국 역사상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이 직면한 제반문제를 고려할때, 부정부패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임 장쩌민江澤民정권이나 후진타오胡錦濤정권은 그저 쉬쉬하며 뒤로 미루는데 급급했다. 그들은 오로지 고도의 경제성장이라는 것으로 인민들을 현혹하며 이 문제들을 훗날의 시한폭탄으로 돌려왔던 것이다. 그속에서 이 문제들은 더이상 좌시해선 안될 수준까지 비등하고 말았다. 

나는 중국의 이와같은 문제를 ‘두더지 게임’에 비유하곤 한다. 한쪽에서 두더지 머리가 튀어오르면 망치로 때려 제압하고 또다른쪽에서 튀어나온 두더지 머리를 때려 제압하는 그런 게임말이다. 

하지만 오락실의 게임과 중국의 문제들은 한가지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중국의 문제들은 복합적으로 계속, 혹은 새로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없었던 IT문제나 4차산업 등 새로운 유형의 문제들이 쉼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왼쪽 저끝에 있는 머리를 제압한다음 오른쪽 맨끝의 머리를 제압하려 할때 왼쪽 저끝에서 다시 두더지 머리가 튀어오르게 되면 제압하기 어렵게 된다. 한순간 어물거리면 다른 쪽에서 또 다른 머리들이 인정사정없이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중국 역사가들에 의하면, 중국 역대 왕조들의 평균 존속기간은 약 70여년 전후에 불과하다. 건국한지 70여년이 지나면 그동안 축적되어온 부정부패, 빈부격차 등과 같은 다양한 문제로 인해 민초들이 봉기했다. 그것이 계기가되어 왕조들이 멸망했던것이 곧 중국의 역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진나라는 진승오광의 난에 의해 붕괴되기 시작했고, 한나라는 황건적의 난, 당나라는 황소의 난, 원나라는 홍건족의 난에 의해 붕괴되는 등 중국의 역사는 민생봉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서 주목할것이 마오쩌뚱이 중국을 건국했던 해인 1949년이다. 중국왕조가 멸망하기를 반복하던 70년전후에 가까워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이 역사를 돌아보며 식은땀을 흘리는데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2013년 집권 이후 줄곧 개혁심화를 최우선 순위에 내걸고 있는 것도 공산당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절대절명의 고육지책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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