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직업관
한·중·일의 직업관
  •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 대외교류 부총장
  • 승인 2020.09.0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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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의 직업관은 직장에 대한 거의 절대적인 충성으로 잘 알려져 왔다. 일본인들은 직장을 더 큰 가족 사회처럼 여기며 웬만한 가정사보다 더 중시해 왔다. 반대로 직장은 종업원들을 가족처럼 잘 보살펴 주며 이에 화답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서구화되어 평생 고용의 개념이 사라져 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뿌리 깊은 전통이 단기간에 바뀔 수 있을까?

한편 일본에 비해 13억 중국인들의 일에 대한 의식과 업무 태도는 과연 어떨까? 특히 대학을 졸업한 중국의 젊은 엘리트들의 직업관은 어떨까?

“우 교수, 내 명함 줄게.”
“명함? 지난번에 받았잖아.”
“아, 나 얼마 전에 직장 옮겼어.”

중국인들의 직업관에 대해 익숙해지기 전 미국 로스쿨 재학 때 만난 중국인 변호사 친구와의 대화다. 이런 대화는 몇 번인가 반복 되었었다. 미국에서 귀국한 지 2년만에 그는 무려 5번이나 직장을 옮겼기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듯, 직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명함을 내주는 이 친구. 그런데 알고 보니 중국 국내파의 또 다른 친구는 1년 사이에 2번, 또 다른 지인은 1년이 막 지났을 무렵 명함을 바꾸는 것이었다. 

중국인들의 잦은 이직은 이들 한두 명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 많은 중국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중국인의 잦은 이직 현상은 실제로 중국 베이징에 있는 CRT라는 시장조사기구가 조사한 바로도 입증되고 있다. CRT에서 중국 젊은 세대들을 대상으로 직업관, 특히 이직률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응답자들 가운데 70퍼센트 이상이 입사 후 1년 이내에 이직한 적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인들의 잦은 이직의 이유로는 무엇보다도 직업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을 ‘수입’에 두고 있는 직업관에서 비롯된다.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렵지 않게 직장을 바꾸는 것이다. 현재의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재직하다가 이력서에 또 하나의 경력 사항을 추가시킨 뒤에 더 나은 대우를 찾아 다른 직장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중국 내 외국 기업들은 인재난에 힘겨워하게 된다. 일단 괜찮은 인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어렵사리 채용한다 해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지면 이번에는 또 언제 훨훨 날아가 버릴지 모르니 말이다. 인구 대국 중국에서 인재난에 허덕인다는 아이러니는 바로 이와 같은 연유에서 비롯된다.

그러다 보니 중국인들의 근무 태도나 회사에 대한 로열티는 우리보다 훨씬 덜할 수 밖에 없다. 인지도 좋고 대우 또한 좋은 기업들의 경우야 일벌레라 불리곤 하는 일본인들이나 철야를 불사하는 우리나라의 직장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비상을 위한’ 중간 기착지쯤으로 여기는 일반 회사에서의 근무 자세는 우리 기준으로 볼 때 일을 열심히 한다고 말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물론 고용자 측에서도 이에 대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일을 더 시키려 하면 바로 ‘튈’수 있으므로 직원 관리를 그야말로 상관 모시듯 해야 한다. ‘사회주의’ 여야 마땅할 중국에서도 각종 포상금,상여금 제도와 인센티브제 등 근무 자세를 더욱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자본주의 사회 그 어느 곳 못지않게 경주되고 있는데 그 원인은 바로 이와 같은 것에서 연유된다.

이에 비해 일본은 어떠한가? 먼저 일본의 기업 풍토, 근무 환경은 대단히 엄격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꿈에 그리던 일본의 대기업에 취직한 한국인 지인 김 모 씨는 입사 후 6개월도 채 안 되어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해병대를 제대한 그는 유학 생활 중에도 고된 아르바이트를 참아 내며 억척스럽게 지내 온 터였다. 그러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일본의 M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한국의 직장도 그만두고 일본행을 택했다. 그런데 “꿈이 이뤄졌다!”며 어쩔 줄 몰라 하던 M 기업을 스스로 사직했다고 한다. 수개월 사이에 놀랄 만큼 수척해진 그가 “숨 막혀서 도저히 견뎌 낼 수 없었다.”고 말할 정도이니 일본 기업의 근무 풍토가 얼마나 엄격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중국 내 한국 기업에 대해 중국인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도 중국 기업에 비해 근무 강도가 너무 강하고 기업 풍토도 너무 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을 두고 이렇게 평가하는 중국인들이 위와 같은 일본 기업에 입사하게 되면 어떨까? 

그들은 오히려 한국인보다 더 잘 버티어 내는 경향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몇 년만 고생해서 악착같이 엔화를 벌어 모으면 중국에서 자신의 비즈니스를 일궈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2~3년 고생하여 저축하면 중국에서의 ‘한 밑천’이 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물가 차이는 재일在日 중국인들에게 오히려 온갖 역경을 극복하게 하는 큰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30대의 한 중국인이 주야를 가리지 않고 ‘투잡’을 병행하여 어느 정도의 돈을 손에 쥐게 되었는데, 활짝 웃어 보이는 그의 치아는 아직 30대임에도 이미 듬성듬성, 회복 불능의 상태였다. 결국 그렇게 고생하여 모은 돈을 치통에 쏟아 붓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미국을 위주로 한 서구식 변화를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지만 일본 사회의 현황을 보면 아직까지는 주로 하드웨어 부문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즉 개개인의 의식 변화에는 그 파급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다. 이직과 관련해서도 일본인들은 매우 신중하다. 

대부분의 일본 샐러리맨들도 직장 내 인간관계나 업무 부하 등에 대해 힘들어하며 한두 번의 이직은 고려해 본다. 아울러 직장을 실제로 바꾼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직 실행은, 한 일본인의 표현 그대로라면, “눈앞에 겹겹이 놓여 있는 험산 준령을 넘는 격”이다. 여기에는 아직도 이직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평생직장”이라는 관념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직으로 오히려 더 안 좋게 되었을 경우, 바로 또 이직하려 하는 중국인들과는 달리 “안정감이 없다.”라는 낙인이 찍힐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 또한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이직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중국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일본의 상반된 시각은, 양국에서의 이직률에 큰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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